
주문한 음식이 30분 넘게 안 오면 우리는 배달 앱을 열고 별점을 깎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토요일 새벽에는 빵집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섭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이 지금의 소비와 광고 시장을 꽤 잘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림과 나의 시간의 외주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습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6년 8월에 낸 보고서에도 이 두 모습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물류기업 DHL이 29개국 온라인 쇼핑객 2만 9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가 원하는 배송 옵션이 없으면 구매를 포기한다고 답했습니다. 반품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73%가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소비자는 가격과 제품 사양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덜 기다리고, 덜 움직이고, 덜 번거로운가. 이것 역시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는 서울의 명품 매장이나 인기 베이커리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어떤 기다림은 견디기 싫어하면서, 어떤 기다림에는 기꺼이 시간을 쓸까요?
이런 현상을 소비자의 일관성 없는 행동으로 보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일은 돈을 내고 맡깁니다. 반대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에는 기꺼이 시간을 씁니다.
시간은 아끼는 것이 아니라, 고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선택에는 개인의 소득과 시간 여유도 영향을 미칩니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광고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우리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시간을 쓰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간을 아껴줘야 하는가?
광고는 남의 시간을 빌리는 일입이다 저는 20년 넘게 디지털렙사에서 광고를 팔다가 최근 광고대행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다가 문득 제가 그동안 팔아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는 디지털렙사에서 지면과 노출을 팔았습니다. 결국 노출이란 소비자의 시간을 몇 초 빌리는 거래입니다.
광고주는 그 몇 초를 사기 위해 돈을 냅니다. 예전에 한 소비재 광고주의 캠페인 결과를 보고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주요 매체에서 노출을 충분히 확보했고, 도달률과 영상 조회수, 클릭률도 목표를 넘겼습니다.
숫자만 보면 잘된 캠페인이었습니다. 저는 그 숫자를 차례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광고주가 물었습니다. "그건 알겠는데요. 그래서 우리 브랜드가 뭐가 달라졌나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노출과 클릭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 숫자가 실제로 소비자의 행동이나 브랜드의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성과가 부족하면 노출을 더 늘리는 쪽으로 답을 찾았습니다.
그날 이후 질문을 바꿨습니다. 소비자는 노출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미 가치 있는 일과 가치 없는 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고의 역할도 단순히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소비자가 왜 그 시간을 우리 브랜드에 써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AI가 광고를 쉽게 만들수록 생기는 일 요즘 광고 제작 환경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카피도 AI가 만들고, 이미지도 만들고, 영상도 만듭니다. 타겟팅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고 광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타겟팅도 훨씬 정교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모두가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 소비자가 봐야 할 콘텐츠도 함께 늘어납니다.
광고 제작의 희소성은 낮아집니다. 반면 소비자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입니다. 광고를 만드는 것은 점점 쉬워지는데, 소비자의 시간은 오히려 더 희소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광고 경쟁은 ‘누가 더 빨리, 많이 만들 수 있는가’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누가 소비자의 시간을 얻을 가치가 있는가. 맥킨지의 2026년 유럽 소비자 조사에서는 AI 쇼핑 도구 이용자의 63%가 브랜드·가격·리뷰 비교에 AI를 사용한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56%는 AI가 선택지를 추천하고 사람이 최종 결정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47%는 AI가 반복 구매를 알아서 처리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비교는 맡기지만 결정은 직접 하겠다는 것입니다.
컨설팅사 커니는 상품과 소비자 관여도에 따라 AI 커머스를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광고인의 관점에서 보면 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생필품처럼 반복 구매가 많은 영역입니다. 휴지, 세제, 생수처럼 구매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상품은 AI가 구매 과정을 상당 부분 대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소비자가 광고를 보기 전에 AI에게 먼저 선택받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두 번째는 가전, 금융상품, 여행처럼 비교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AI가 수많은 선택지를 몇 개로 압축해 준다면,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직접 만날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AI가 만들어주는 비교 목록 안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패션과 뷰티입니다. AI가 추천하더라도 최종 선택에는 사람의 취향과 판단이 여전히 크게 개입합니다.
네 번째는 명품, 한정판, 팬덤과 같은 영역입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사람이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줄을 서고, 기다리고, 찾아가고, 직접 경험하는 과정까지 브랜드의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분류 자체는 보고서의 내용이고, 이를 광고 전략에 대입한 것은 제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브랜드가 소비자의 15초를 ‘경험’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브랜드는 소비자가 시간을 쓰게 만들어야 하고, 어떤 브랜드는 소비자가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산을 보기 전에 먼저 물어봅니다 저는 요즘 광고 예산을 볼 때 바로 매체부터 나누지 않습니다. 먼저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 카테고리에서 소비자는 줄을 서는가, 아니면 맡기는가? 물론 현실의 소비자는 둘 중 하나로 완전히 나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 커피는 줄을 서서 마시면서, 생수는 정기배송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패션은 AI 추천을 받으면서도 직접 매장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절대적인 분류가 아니라 광고 전략을 생각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로 봅니다. 소비자가 ‘맡기는’ 비중이 큰 카테고리라면 단순 노출을 늘리는 것보다 제품 정보를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제품의 스펙, 가격, 리뷰, 구매 조건처럼 AI와 검색 시스템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대로 구조화하고 커머스 플랫폼에서의 정보도 정리해야 합니다. 광고를 보기 전에 비교가 일어나는 시장이라면,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마케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줄 서는’ 비중이 큰 카테고리라면 반대로 소비자가 시간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팝업스토어, 커뮤니티, 참여형 콘텐츠, 브랜드 경험처럼 소비자가 직접 찾아오고 머무르는 활동이 중요해집니다.
이때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 시간을 소비자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그 중간에 있는 카테고리라면 AI의 추천과 사람의 선택을 동시에 가져가야 합니다.
AI가 발견을 도와주더라도 최종 선택은 사람이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산을 몇 대 몇으로 나누느냐가 아니라,
우리 카테고리에서 소비자의 시간이 어디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광고 성과 보고서의 첫 장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도달률, 노출수, 조회수, 클릭률을 가장 먼저 보여줬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앞으로 이 숫자를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소비자의 선택이 AI를 거치는 시장에서는 그 앞에 다른 질문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두 가지를 보고 싶습니다.
1. AI에서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언급되는가 같은 카테고리의 질문을 AI에 반복적으로 던졌을 때 우리 브랜드가 얼마나 언급되는지, 어떤 맥락에서 추천되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입니다. 아직 업계 표준으로 정립된 단일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AI의 답변도 매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숫자로 판단하기보다 시간에 따른 변화와 경쟁 브랜드와의 상대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브랜드 경험이 어떻게 변했는가 캠페인을 본 뒤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찾아보는 행동이 늘었는지도 봐야 합니다. 광고를 봤다는 것과 브랜드를 경험해봤다는 것은 다른 행동입니다. 노출은 광고가 만든 결과일 수 있지만, 검색은 소비자가 한 번 더 시간을 쓴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제가 바꾼 질문 예전에는 광고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고객이 이 광고를 보는 15초를, 비용으로 느낄까요? 경험으로 느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줄 서는 카테고리에서 더 적합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맡기는 카테고리의 광고주에게는 질문을 바꿉니다. “소비자가 AI에게 탐색을 맡긴 상황에서, 귀사 브랜드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고 있습니까?” 최근 광고주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네이버에서 우리 브랜드가 얼마나 노출되나요?” 라는 질문이 많았다면, 요즘은 “ChatGPT 같은 AI 검색에서 우리 브랜드는 어떻게 나오나요?” 라는 질문을 먼저 받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검색창에 브랜드를 직접 입력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묻고, 그 답을 보고 선택하는 상황이 조금씩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색 결과의 상단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AI가 여러 브랜드를 비교하고 몇 개의 선택지로 압축하는 과정에 우리 브랜드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광고를 보여주기 전에 이미 선택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 답을 찾는 중입니다 한 가지는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 역시 AI 검색 최적화와 관련된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글의 결론에는 저의 이해관계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을 그대로 믿으시기보다는 직접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AI에게 우리 카테고리를 물어보십시오. “○○을 살 때 어떤 브랜드를 추천해?” “○○ 브랜드의 장단점은?” “○○ 분야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브랜드는?” 그리고 우리 브랜드가 나오는지, 어떤 이유로 언급되는지, 경쟁 브랜드와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직접 보십시오. 10분이면 됩니다. 저는 이 작은 실험에서 앞으로의 광고 전략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광고주가 제게 물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브랜드가 뭐가 달라졌나요?” 20년 넘게 광고를 하면서 저는 그 질문에 노출과 클릭으로 답해왔습니다. 지금은 대행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조금 다른 답을 찾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에 시간을 썼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소비자가 시간을 쓰기 전에 AI가 우리 브랜드를 선택지로 올려놓았는가. 아직 완성된 답은 아닙니다
예전의 광고는 소비자의 시간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탐색을 대신하는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소비자가 왜 우리 브랜드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그 전에 AI는 왜 우리 브랜드를 선택지에 올려야 하는지.
결국 앞으로의 광고는 노출 경쟁이 아니라 이유의 경쟁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질문에서 광고를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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